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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복원가 김주삼
[미술전문/특수직] 2018-02-28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가와 추리게임을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작가마다 문제가 다르고, 작품마다 난이도가 다르며, 작품이 살아온 상황마다 주어지는 힌트도 다르다. 그가 하는 방법이라곤 끊임없이 고뇌하며 작품과 같이 숨 쉬어 보는 것. 그러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유레카를 외치며 답을 찾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다친 그림을 복원하는 사람, 김주삼 소장을 만나 보았다. 글 | 김한울 기자

 

김주삼 ART C&R 미술품 보존 복원 연구소 소장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파리1대학에서 미술품 보존 복원학을 공부했다.
그 후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복원가로 14년 동안 재직했고,
현재 ART C&R 미술품 보존 복원 연구소를 설립해 활동 중이다.

 

INTERVIEW

 

Q. 학창 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나요.
진득하게 하나를 깊이 파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여러 방면으로 다재다능했어요. 공부 빼고 다 좋아했죠. 저희 집안 사람들이 특출한 재능은 없어도 대체적으로 손재주가 좋았어요. 아버지도 그림을 꽤 잘 그리셨죠. 그 재주를 이어받아 저도 손끝이 야문 편이었어요. 대학교는 화학과에 진학했지만 미술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동아리 방에 살다시피 하며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나중에는 학과 공부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죠. 특히 이공계가 한번 흐름을 놓치면 더 진도를 따라 잡기 힘들거든요.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께서 지금이라도 편입을 하는 건 어떠냐고 권유하셨지만, 그림 그리는 건 좋아해도 예술가가 될 만큼의 열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이상의 재능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Q. ‘복원가’로 진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연히 미술 잡지에서 우리나라 작품을 일본까지 가서 복원해 왔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 기사를 보고 왠지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미술도 할 수 있고, 알고 있는 화학 지식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인터넷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복원’이라는 분야가 지금보다 덜 알려졌던 시기라 정보가 무척 부족했어요. 그냥 막연하게 프랑스에 가면 있을 것 같다는 생각 하나로 무작정 유학을 떠났어요.

 

Q. 유학시절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한국에서 이과를 전공했기 때문에 1, 2학년 때는 미술사나 고고학 수업을 들어야 했어요. 재미있는 과목이지만 불어의 장벽이 높았죠. 교수 수업이 2주마다 한 번씩 있는데 유인물을 200장씩 줘요. 알아들어도 수업이 끝나면 필기한 게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의 노트를 빌렸어요. 카페에서 커피 값 내주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 뒤에 빨리 가서 복사를 해오는 거죠. 시험기간에 몰아서 할 수가 없으니까 수업 끝날 때마다 그랬어요. 그리고 다음 수업을 할 때까지 복사본을 들고 복습만 주구장창 하는 거죠. 그렇게 2년 정도는 가수면 상태로 살았던 것 같아요. 이론은 그랬지만 학과 실무 교육은 루브르나 퐁피두에서 일하는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이 가르쳐 주는데 1, 2학년 때는 회화, 금속, 도자, 직물, 벽화, 등 다양하게 배워요. 전공을 조금씩 배우고 3학년 올라갈 때 선택하는 거죠. 저는 애초에 회화의 보존 복원을 배우러 갔고, 손재주 덕분에 실기수업을 잘 따라갔어요. 1년 정도 공방에서 인턴십을 하기도 했어요.

 

Q. 미술품 복원가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나요?
한 큐레이터가 아트 닥터라는 말을 했는데 재미있는 표현인 것 같아요. 사람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치료해서 원래 기능을 찾게 해주잖아요. 그것처럼 작품이 노화하거나, 핸들링을 잘못해서 원래 모습보다 상한 작품을 작가가 최초로 원했던 상태까지 만들어주는 일을 해요. 그렇다고 작가가 한 것과 똑같이 만드는 것은 아니에요. 상처를 고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Q. 복원가로서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셨나요?
삼성문화재단에서 회화 작품을 복원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어요. 마침 당시 호암미술관의 운영실장님과 삼성물산에서 근무 중인 친형님이 같이 일을 하고 계셔서 그분께 제 이야기가 들어간 거죠. 저는 프랑스에서 박사과정을 준비할까 했지만 전공을 살려서 일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고민도 안 하고 들어왔죠. 저는 일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리움 미술관에서 14년간 일 했어요.

 

Q. 복원을 하다가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영상이 음악보다 앞서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영상은 음악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철저하게 가사나 멜로디, 음율, 박자를 돋보이게 해줄 수 있어야 하죠. 그런 이유로 키포인트라 생각하면 영상에 가사를 쓰기도 해요. 아니면 작사가에게 직접 어떤 부분을 더 중점적으로 썼냐고 물어요. 가사를 표현할 수 있는 연기력을 갖춘 배우도 정말 중요해요. 보는 사람이 몰입하기 좋게 생경한 얼굴이면 더 좋아요. 평소 SNS로 배우 서치도 많이 해요. 뮤직비디오는 대사가 없는 무언극이니까 이미지가 되게 중요하거든요. 눈빛 같은 표현력이요. 이 모든 작업들이 음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작업이죠.

 

Q. 작품과 클라이언트 사이에서 일을 해야 하니까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아요.
내가 그린 그림은 망치든, 어떻게 하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복원은 나한테 의뢰가 들어온 거예요. 작품의 몸값은 물론이고 클라이언트가 비용까지 지불하면서 나를 믿고 맡기는 거잖아요. 평가가 따르고 작품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감도 들어요. 저는 목숨 걸고 일해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요. 방심하면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이거든요.

 

Q. 복원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을 알려주세요.
의사가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기본 바탕이 인류애에요. 아트 닥터라고 한다면 작품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죠. 작가가 영혼을 쏟아낸 결과물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게 해결돼요.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클라이언트에게는 의미가 큰 작품일수 있으니까 소중하게 다루죠. 제 후배들도 아직까지 복원을 하다 막히면 방법에 대해 묻기 위해 연락이 와요. 자존심보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기반이 되어있기 때문이에요. 작품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니까요. 저도 나이를 막론하고 젊은 친구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해요. 언제 어디서 좋은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거든요.

 

Q. 복원 분야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해 주신다면?
제 선배들도 10년 정도 일을 해야 작품 좀 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숨을 길게 쉴 줄 알아야 해요. 석사하고 1년 일했다고 해서 바로 유명해지고 지명도가 쌓이는 게 아니거든요. 작품과 함께 길고 천천히 숨 쉬는 거죠. 가끔 전망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학생들이 있어요. 미안하지만 저도 몰라요. 전망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요. 얼마만큼 하느냐에 따라서 전망이 달라지는 거예요. 저희 연구소에서 일을 배우는 친구들에게도 꾸준하게 말해요. 경험을 쌓아서 기관에 몸담고 일하다가 지명도를 쌓아서 나와야 한다고요.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아무런 경험이 없는 학생을 누가 지목하겠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책을 몇 권 마무리 짓고 난 다음에 후배들을 양성하는 게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제 위로 선배들이 계시기도 했지만 커리큘럼에 맞추어 배운 사람은 제가 첫 번째라 운도 좋았고, 여건도 좋았어요. 이제 후배들은 근현대 미술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좋은 직업인 건 분명해요. 늘 작품과 가까이 할 수 있어서 행복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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